
공국 신화
이곳은 공국의 건국 신화를 담고 있는 기록실입니다.
공국의 기원을 담고 있는 건국 신화 『죽은 별의 지도』는 과거 발견된 공국 토양의 전설, 잃어버린 문서와 유물들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영토 없는 여정을 떠난 이들의 이야기들이 모여 일궈내고 발굴해낸 국가와 토양이 이 자리에 모입니다. 이 신화는 고정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우리가 어떻게 함께 믿고, 상상하고, 존재할 수 있는지를 실험합니다.
공국의 신화와 작화들은 매달 1일, 공국 신문을 통해 각 한 장씩 공개됩니다. 공개된 신화와 작화들은 아래 아카이빙됩니다. 공국 신문을 구독하실 시 매달 1일 가장 빠르게 신화와 작화 업데이트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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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텅 빈 중심이자, 모든 것이 시작되는 장소입니다.
다음 장의 신화는, 어쩌면 당신의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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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I8 2025
BK 2025
BK 2025
UIA 2025
38 2025
VO 2025
08 2025
49 2025
8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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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차악의 어둠
뜨듯하게 땀에 절여진 등 위로 면이 달라붙는다. 어떤 불타는 별이 가까워졌나 보다. 끔찍하게 긴 밤의 서막이다.
은하계의 모든 천체들이 생명체들로, 그들의 영토들로 가득 차면서 땅을 둘러싼 치열한 전쟁이 발발했다.
다른 행성을, 항성을, 위성을 찾고, 다른 혜성을, 성단을, 성운을 찾고 찾아도 이들이 발 디딜 곳은 없었다. 모든 천체들의 자원과 땅은 생명체들의 사적 소유지로서 그 표면이 가득 메워졌고, 그렇게 채워진 표면들 위 소유지를 표시하는 경계들은 엎치락뒤치락 서로를 밀고 밀려나며 그어지고 또 그어졌다. 많은 존재들이 자신만의 작은 땅을 넓히기 위해 전쟁을 벌였다.
이 전쟁조차 참여하지 못하는 존재들도 있었다. 땅을 넓히기 이전에 애초에 점유할 땅을 얻지 못한 채 은하계의 모든 천체로부터 추방당한 존재들. 살아가던 땅이 폭발과 함께 증발해버린 존재들. 땅을 잃은 존재들. 이들은 행성에서 쫓겨나 ‘공허’라 불리는 무중력 공간으로 내몰렸다.
공허는 이름 그대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발을 디딜 땅도, 몸을 기댈 장소도 없었으며, 서거나 눕는 것도 불가능한 환경이었다. 먹고 자는 기본적인 생존 행위조차 어려웠다. 처음 공허에 도착한 존재들은 소수에 불과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추방된 이들이 점점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BK가 공허로 추방된 지는 909일이 지나고 있다. 적어도 BK가 떠나온 행성의 일주를 따르자면 그렇다. 공허의 생활에서 BK가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아무리 청해도 오지 않는 잠이다. 매일이 극야처럼 어둡다가도 백야처럼 끝없이 밝은 공허 속에선, 규칙적인 생활리듬은커녕 하루를 시작하고 끝내기 위해 눈을 주기적으로 붙이는 것도 불가능에 가까웠다.
특히나 끔찍한 것은 더위다. 차라리 극야와 같은 어두움이 지속되는 시간들, 몸을 싸매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속에서 오는 한기의 시간들, 온기를 찾아 떠돌다 멀리 있는 뜨거운 것을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포근함의 시간들. 차라리 이 극한의 긴장과 이완을 오가는 시간들은 자장가를 불러주는 듯한데, 오히려 백야같이 내내 밝고 뜨거운 시간들이면 어디도 도망갈 곳이 없다. 빛과 열을 피해 아무리 이동해보아도 알 수 없이 멀리 떨어진 온갖 별들이 쏟아내는 빛은 사그라들지도, 피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커진 몸의 움직임으로 속 열기가 오르고 이 밝음에서 도저히 어둠은 찾을 수가 없다. 이 화사한 곳에서 자지 못하고 쉬지 못하는 스스로의 몸뚱어리를 탓할 뿐이다.
공허에 떠도는 많은 행성들과 별들은, 추방자들이 갈 수 없고, 진입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공허에 그들의 열기와 빛깔로 공기, 온도, 습도, 조도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쳤다. 그 주기나 변동을 파악하기에는, 제각기 움직이는 그들만의 패턴이 있다 한들 계산할 공식도, 펜도, 종이도 없는 추방자들에게 이 행성들은 그저 언제든 몰려와 그들을 얼려버리거나 태워버릴 것만 같은 변덕 맞기 짝이 없어 예측할 수 없는, 그래서 더 두려운, 조련할 수 없는 거대 괴물 같기만 했다.
그들은 아예 시야에서 사라지기보단 언제나 저 멀리라도 강하고 밝게 자리하고 있어서, 그들을 피해 어둠으로 올 수는 있었지만 결국 추방된 존재들은 온기가 필요했기에 어느정도 그들의 빛과 열을 느낄 수 있는 곳을 찾아다녀야 했다.
결국 BK에겐 괴로운 것은 결코 어둠조차 쉽지는 않다는 것이다. 이동하는 것보다도, 추위를 이유로 완전한 어둠을 스스로 견딜 수 없다는 것. 조금의 빛과 시야가 확보되는 순간 불면증 증상이 극심해지는 BK에게, 어둠은 빛보다는 견딜만하지만 온전히 평안할 수는 없는 차악이었다.
그 차악 속에서 견딘 지도 300일이 다가온다. BK는 여전히 그가 떠나온 행성의 일주대로 날을 센다. 그렇게라도 일 수를 세어야 그나마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되찾아올 수 있지 않을까하는 바람이다.
AD2025년 7월 1일 <2장>이 공개됩니다.